<묘소 초입>

안동 풍수 기행, 돌혈의 땅과 인물 (p 274~279)

진성 이씨의 시조인 이석의 묘소는 청송군 파천면 신기리에 있다. 안동에서

동쪽으로 34번 국도를 따라 40Km를 가면 진보가 나오는데 진보 우회도로의

중간쯤에서 오른 족으로 청송 가는 31번 국도가 있다. 그 지점에서 청송 쪽으로 5Km 지점에 오른쪽으로는 지동, 왼쪽으로는 옹점 가는 길을 알리는 도로 표지판이 서있다. 그곳에서 바로 송강교가 이어지는데 오른쪽에 용전천을 건너 지동으로 가는 큰 다리가 있다. 송강교를 지나자마자 도로 왼쪽에 ‘진성 이씨 시조 묘소 입구’라고 새겨진 큰 표지석이 있다.

 표지석이 있는 길로 좌회전해서 들어가다 700미터 지점에 이르면 삼거리가 나오는데 왼쪽 길로 접어들어 150미터를 가면 감곡교가 나오고, 다리 끝에서 왼쪽 방천 위로 난 길을 쭉 따라가면 시조묘를 수호하는 기곡재사가 나온다. 재사 바깥마당에서 뒤돌아서 돌아온 길을 보면 왼쪽 앞에 언덕으로 올라가는 길이 보인다. 그 언덕에 있는 시조의 산소를 감람묘甘藍墓라고 부른다.

<시조 묘소>

감람묘

 산소가 있는 언덕에 올라서면 상당히 가파른 능선에 묘소 네 기가 있다. 산소의 모양이나 자리는 일반적인 묘소와 별다른 점이 없다. 하지만 같은 묘는 없는 법이니 감람묘에서 몇 가지 구경거리를 찾아보자.

 첫째, 묘전비의 위치이다. 감람묘는 축대를 쌓아 묘역을 만들고 비석을 묘역의 왼쪽 끝에 세워 놓았다. 묘전비를 묘의 정면에 세우지 않는 경우가 드문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이곳은 묘 앞에 비석을 세우지 않아야 할 특별한 이유가 없는 듯한데도 한쪽으로 치우쳐 있다. 그것은 아마도 석축으로 대를 쌓은 묘역의 앞부분 즉 후손들이 산소 앞에서 절을 할 수 있도록 널찍하게 닦아놓은 제체가 너무 가파르고 좁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여유가 있는 오른쪽에 세운 듯 하다. 그 결과 산소에 오르는 사람들은 자연히 비석이 서있는 쪽으로 움직이게 된다.

 둘째, 가까이 가서 비석을 살펴보면 아주 흥미있는 몇 가지 사실을 보게 된다. 묘비의 크기나 모양 및 세우는 위치는 일정하지 않다. 그렇지만 어떤 식의 묘비든 아름답고 품위있게 만들고자 하는 것은 인지상정이다. 감람묘의 묘비는 아주 훌륭하다. 나는 여러 묘비를 보았지만 감람묘의 묘비처럼 깔끔하고 아름다워 단정한 느낌을 주는 묘비를 본 적이 없다. 동심원을 새긴 향로석, 대리석의 상석과 비신, 돌꽃으로 치장한 비갓 등 전체적인 분위기가 몹시 고아하다. 비신의 정면에는 ‘고려봉익대부밀직사진성이공지묘’라 새긴 두전頭篆 아래 바로 묘갈명이 이어진다.

 그런데 묘비에 새겨진 내용이 일반적인 묘비의 내용과 확실하게 다르다. 신도비가 아닌 듯한데 두전頭篆이 있고 전면에는 작은 글씨로 마치 음기의 내용처럼 씌여있다. 가끔 이런 경우를 보았으니 그리 이상할 것은 없다. 하지만 뒷면에는 무덤의 주인공인 시조의 아들 이자수, 이자방으로부터 12대손 이령까지의 가계가 마치 간략한 족보처럼 새겨져 있다. 더구나 영락 19년(1421) 진사 김진(1500~1580)이 쓴 이양호(이운구의 셋째 아들)의 묘지墓誌까지 병기되어 있다. 묘비에 쓰는 글의 내용을 규정한 법은 없으므로 어떻게 쓰든 관계없지만 그렇게 여러 내용을 쓴 묘비를 나는 어느 곳에서도 본적이 없다.

<묘비와 비석>


<재실>

 셋째, 봉분이 네 기나 있는데 어느 봉분 앞에도 묘비가 없다는 것이다. 대체로 산소 앞에는 이 산소가 누구의 산소인지를 밝히는 묘비가 있는 법인데 감람묘에는 아래쪽에 하나가 있을 뿐이다. 그러므로 이곳에 있는 산소들이 누구의 산소인지 알 수가 없다. 묘갈명을 다 읽을 수 있는 사람이라야만 네 기의 무덤 주인을 정확하게 알 수 있다. 우선 10세손 반초당 이명익(1617~1687)이 지은 시조의 묘갈명을 보자 거기에는 시조묘를 찾게 된 과정과 이양호의 묘가 이곳에 있게 된 사연이 적혀있다.

 송안군이 안동으로 옮겨 가 살면서부터 자손들이 흩어지고 세대가 점점 멀어져 분묘가 있는 곳을 잃어 버렸는데 산 중턱에 세 개의 큰 무덤이 연이어 있어 옛날부터 그 고을 사람들 간에 전해오기로는 ‘이씨 시조묘’라 하였지만 표기로 이를 증명할 수는 없었다. 숭정 을유년(1616)에 원손 시립이 세 개의 큰 분묘 바로 뒤에서 시조의 증손인 주부 양호의 무덤을 파다 지석을 발견했는데 그 글에 ‘명귀(體魄)를 선조에게 붙여 제사를 받는다.’ 고 했다. 이것으로써 세 분묘가 시조 및 전후비의 묘소이며 양호를 이곳에 합장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시조묘와 배위配位의 위치는 확인 되었다. 결국 맨 위의 묘가 이양호의 묘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부인이나 후손의 산소가 선조의 산소보다 뒤에 있는 것을 ‘역장逆葬’ 혹은 ‘도장倒葬’ 이라고 부르는데, 이는 일반인이 산소를 쓸 때 가장 꺼리는 것 중의 하나이다. 심지어 어떤 사람들은 ‘절대로 안 된다’고 주장하지만 그것은 아무 근거 없는 잘못된 믿음 중의 하나다. 물론 여러 기의 산소를 한 능선에 모실 때 후손이 선조 보다 위에 올라가 있는 것은 보기에도 좋지 않고 기분도 나쁘다. 그러나 산소를 상하연분上下連墳으로 써도 되는지 안 되는지, 후손이 뒤로 갈 수 있는 곳인지 없는 곳인지는 땅의 성격으로 결정할 문제이다. 연분이나 도장을 해도 되는 곳이 얼마든지 있고 실제로 그렇게 조성해 놓은 곳도 많다.

 그러나 이 곳은 안 된다. 안되는 이유 중 가장 중요한 것은 묘역이 모두 같은 성격을 갖고 있는 땅이라는 점이다. 즉 용맥이 진행을 끝내고 혈장穴場을 만드는 곳이기 때문에 집으로 비유하자면 안방이라는 것이다. 안방에 배위와 같이 있는 것은 아무런 문제가 없지만 후손은 곤란하다. 이양호의 묘가 있는 지점은 도두입수처到頭入首處이므로 건드리지 말아야 하는 곳이다. 그러므로 이어지는 갈명에서는 이곳에 매장된 유골을 다른 곳으로 옮겼다고 분명하게 기록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산소가 있는 까닭은 무엇인가? 나는 그 무덤이 유골이 없는 ‘헛묘’라고 생각한다. 덜떨어진 사람들의 쓸데없는 욕심에 의해 빚어지는 밀장密葬을 방지하기 위해 만들어 놓았을 것이다.

 감람묘의 전체적인 형국은 금계포란형金鷄抱卵形으로 알려져 있다.